본문 바로가기

조선 역사 이야기

수양대군, 조선의 왕이 되다.

반응형

수양대군, 조선의 왕이 되다.

 

단종이 즉위하고, 김종서와 황보인은 수양대군 세력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단종이 즉위한 후 명나라에 인증을 받기 위해 누군가 사신으로 가야 하는데 사신으로 안평대군을 추천한다.

그런데 수양대군이 자신이 가겠다고 자청하여 명나라로 떠난다. (사실 사신은 조선 중앙에서 멀어지는 것이고 명나라까지 가는 길에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몰랐기에 다들 꺼려하는 자리이다.)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활동하며 자신을 어필하고 온 수양대군은 세력이 강해진다.
이후 수양대군파와 고명대신파(황보인,김종서)로 대결구도가 잡힌다.

 

수양대군파

과거에는 급제했으나 가문이 좋지를 않아 권력에서 밀린 자들이 수양대군 쪽으로 붙었다.

바로 한명회와 같은 인물들이다. 
신숙주와 정인지 같은 집현전 학자들도 수양대군편에 선다.
종친들도 수양대군편에 선다. 대표적으로 세종의 차녀 정의공주, 세종의 형 양녕대군도 가담한다.

 

 

계유정난을 통해 왕이 된 세조
수양대군은 경복궁을 치기 전에 출정식을 하게 되는데 "왕권을 위협하는 김종서와 황보인 같은 이들을 없애야 한다."라고 소리친다. 병력들을 경복궁으로 보내고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으로 향한다.

수양대군이 문 앞에 서자 김종서가 밖으로 나온다. 수양대군은 하인을 시켜 김종서에게 서신을 주었고 서신을 읽기 위해 김종서가 빛을 찾아 움직이는 순간 철퇴를 날려 김종서를 쓰러트린다. 이후 경복궁을 접수한 수양대군은 살생부를 적어놓고 대신들을 궁궐로 불러들인다.
명단을 보며 고명대신들을 다 죽이고 자신의 동생인 안평대군도 유배보내며 완벽하게 권력을 장악한다. 
계유정난을 통해 권력을 잡은 수양대군은 3년 후 단종에게 양위를 받아 세조가 된다.

 

세조가 된 이후

계유정난 당시 정난공신이라는 첩지를 받은 공신은 42명이었다.

계유정난의 목표가 권신들을 낮추겠다였는데 이로 인해 공신들이 더 많아진 것이다.

 

세조는 공신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세조의 측근이라고 볼 수 있는 한명회 조차도 투옥시키고 믿지 않기도 한다. 

세조가 왕 위에 오르고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게 되는데 난을 진압하는데도 대신들에게 병력을 주지 않는다. 

20대 중반의 무장들에게 병력을 주면서 난을 진압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남이장군이다.

세조 이후가 되면 이 공신들이 팀을 이뤄서 왕권을 견제한다.

세조 이후는 왕권이 무너진다. 태종과 세종이 만들어 놓았던 군주의 권한이 수양대군을 끝으로 무너져버리게 된다.

이후엔 공신들이 훈구파와 사림파로 나눠지면서 신권이 강화된 것이다.

 

정인지

어렸을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고 자랐던 정인지는 태종 시기에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세종은 정인지를 상당히 아꼈다고 한다. 수에 능했던 정인지는 세종과 함께 칠정산을 만들고, 훈민정음해례본의 서문을 쓰기도 한다. 

실제 정인지는 신숙주처럼 계유정난에 깊숙히 관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정인지를 탐했기에 그에게 1등 공신을 주었다. 

 

정인지의 술주정

세조는 불교신자로써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 원각사지 10층 석탑도 만들고 불교를 융성화 시키려 노력한다. 정인지는 유학자로서 술자리에서 왜 이리 불경을 편찬하지 못해 안달이십니까 라며 불평을 하자 세조는 정인지를 투옥시킨다. 다시 돌아온 정인지는 또다시 술자리에서 불경 편찬에 대해 불평하자 세조는 술상을 엎기도 했다고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