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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 이야기

피의 군주, 세조의 후손들은 어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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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군주, 세조의 후손들은 어찌 되었을까?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

 

세조가 죽고 나서 자신의 아들이 왕 위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훈구대신이었던 한명회와 척을 지기도 한다.

 
세조의 첫째 아들 의경세자.

 

왕 위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단종이 죽기 전에 19살의 나이로 죽는다. 

의경세자에겐 두 아들이 있었는데 월산대군과 자을산군이다. 

 
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

 

15살에 즉위하고 즉위한지 15개월만에 죽는다. 

재위 기간동안 장인어른인 한명회와 척을 지게 된다. 

예종도 왕권을 강화하고 싶었으나 장인어른을 밟고 올라서야만 했다.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남이장군이 공신으로 올라서게 되는데 예종은 이렇게 젊은 세력의 신공신을 싫어했다. 결국 유자광의 권모술수에 동조하여 남이장군을 죽인다. 

 

예종이 죽었을 당시 예종에게는 4살이었던 제안대군이 있었다.

왜 의경세자의 자식인 월산대군이 왕 위를 물려받지 않고 세조의 둘째 아들이 왕 위를 물려받았을까?
아마도 예종의 장인어른이 한명회의 입김이 컸을 것으로 추론된다.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성종)

 

자을산군이 예종의 뒤를 이어 왕 위에 올랐다. 자을산군의 장인어른 또한 한명회였다.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

 

성종이 왕 위에 있을 때 첫번째 부인이랑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게 된다. 두번째 부인을 들였는데 갑자기 전처가 그립다며 두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첫번째 부인과 다시 결혼하고 깊다고 얘기한다. 이에 제안대군의 엄마는 호통을 치고 달래보았으나 계속 땡깡을 부린다. 성종은 이 얘기를 듣고 설득하나 두손 두발 다 든다.

성종에게 상소를 쓸 때 한자가 아니라 한글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사간원이나 사헌부에서 한글을 한문으로 고쳐서 올리게 된다. 사간들에게 "제안대군은 어리석지 않다. 사촌형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다."라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연산군이 왕 위에 있을 때 수많은 종친들이 죽임을 당하는데 제안대군은 멍청하다는 이미지 하나로 살아남는다.

의경세자의 첫째 아들 월산대군
 
자신의 동생 자을산군이 성종이 되면서 정자 하나 지어놓고 자연과 함께 유유자적하게 시를 읊으며 살아간다. 35살에 요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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